포스트 모더니즘은 말한다. 그 어떠한 시각이미지, 미술사라 할지라도 그것이 마땅히 있어야 할 문맥에서 벗어나게 된다면 한갓 의미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예술 이면에 진실이란 알맹이가 있을 것이라 믿고 이를 쫓는 다면 기껏 잘해야 그 허상만 더듬게 되거나 최악의 경우 있지도 않은 신기루에 갇히게 된다. 그것은 특정한 프레임 안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기호이자 상징이다. 정보와 감정을 전달해주는 헤르메스 역할을 해온 이미지의 정체는 지금 너무나 변덕스러워 그것을 정의하기란 쉽지않다. 이 같은 이미지에 기반을 둔 시각 예술이란 항상 저 너머에 있는 단단한 유토피아일 수가 없다. 언제든지 해석과 시각의 차이에 따라 변형이 가능한 불완전한 기체덩어리이다. 그래서 상황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이미지의 해석과 논의 자체는 더욱더 무의미 해졌다. 대신 예술형식 자체의 중요성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
예로부터 형식의 확장은 창작동인의 확장을 의미했다. 무엇이 이미지로 하여금 수많은 뉘앙스의 차이를 가져오게 헀는지가 다시 중요해졌다. 현대 미술의 형식과 구조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그 전체를 이해하는데 구조적인 틀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데는 이견이 없을 것읻다. 구조, 프레임, 텍스처, 사이즈 등 이미지를 유통시키는 형식은 다양한다. 그러나 필자는 눈에 보이는 확연한 구조 이상의 것을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첫번째 단출르 "Transparency", 즉 "투명성"에서 찾았다.
투명성은 시각적 투사 즉 빛이 통과할 수 있는 조건을 의미한다. 그래서 대상이나 이미지는 그서을 가록 막는 어떤 장애물도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진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이 투명성은 종종 인사의 시지각에 영향을 주며 시간과 공가느이 혼재,환영,대상의 왜곡을 야기시킨다. 이는 빛이 투명한 대상이 내포한 공간을 지나며 관찰자와 대상사이에 환영과 변형을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상은 그 본연의 매체적 특성을 잃어 버리거나 최소한의 물리적 환영과 변형을 만들어 놓기 때문이다.그래서 대상은 그 본연의 매체적 특성을 잃어 버리거나 최소한의 물리적 중량감까지 잃어 버리게 된다. 그것은 매체의 표면 이상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창과 같으며, 빛의 반사가 아닌 통과를 가능케 하는 특수한 환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