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는<KILN>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린다. 도예가들이 쓰는 가마를 전시 타이틀로 쓴 이유를 살펴볼 때 작품들은 이전 작업과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작가는 도예가들이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에 주목하였다. 흙을 빚어서 형태를 만들고 초벌 구이를 한 뒤, 유약을 바르는 일련의 과정들이 끝나면, 최종적인 작업의 완성을 위해 가마에 넣고 불로 구워낸다. 도공의 손을 떠난 작품은 가마 속에서 자연의 힘에 의해 어떻게 완성되어질 것인지 예상은 하지만, 이 과정만큼은 완벽하게 작가가 직접적으로 개입하여 조절 할 수 는 없으며, 어떤 변수에 의해서 작품이 변해버릴지 전혀 손쓸 도리가 없다. 작가는 정해진 과정이라는 틀을 만들어 놓고, 과정에 직접 개입할 수 없는 장치를 회화작업에도 적용하고 싶어하였다. 자기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의도하여 그리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방법을 사용하고자 하는 제작 방식의 모색은 이전작업에서도 꾸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 결과로 이번에는 도예가들이 작품을 만드는 방식을 차용해서 회화 작업에 적용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방식으로 인하여 새로운 작업들은 전반적으로 비슷한 느낌을 준다. 형태적인 부분에서는 이전의 작업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던 색 면들은 많이 축소되고 미로와 같은 격자문양과 자유로운 흐름으로 화면을 채우고 있는 색 면들이 등장하였다. 이러한 면들 사이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미로와도 같은 격자문양이다. 이것은 작가의 작업을 파악할 수 있는 키워드 같은 역할을 한다. 미로는 그 시작과 끝이 모호하고 한군데에서 시작되어 목표점에 도달하는 순간까지의 과정은 복잡하고 얽혀있어서 한번에 파악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우리에게 신비감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앨리스가 토끼를 따라 미로 속을 빠져 들듯이 우리는 그 미로를 따라 움직이게 하는 힘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황창하의 작업은 자연스러운 미로처럼 얽혀있는 색 면과 격자문양이 더욱 극명하게 대비되면서 새로운 운동감과 공간감을 보여준다. 이전 작업들이 선과 면들이 복잡하게 겹치면서 긴장감의 절정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는 작품들은 다양한 층들이 순서대로 쌓여 더욱 깊이 있는 공간들을 만들고 자연스러운 동적인 선들과 색 면들이 더해져 부드러우면서도 자연스러운 공간적인 깊이와 시간성에 운동감과 생동감까지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새로운 작업에서는 화면전체에서 기하학적인 차가움과 엄격함, 날카로움과 부드럽고, 자연스러움, 그리고 자유로움이 혼재되어 나타난다. 작가는 우리에게 이러한 방식으로 다양한 시각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장면들을 보여주어 그 미로 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게 만들고 있다.